부분 동원령
부분 동원령이 내렸을때, 내 머릿속에서 많은 생각들이 있었다. 내가 그 명령을 받아야 한다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이런 특별한 상황에 어떻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하는지 배우기 위해 성경을 더 깊이 읽었다.
많은 경우에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어느곳에 있어야 하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 지, 자주 인도 하셨었다는 것을 새로이 볼 수 있었다. 이것은 단지, 이번 동원령 때 뿐 아니라 우리의 직장, 사역지, 이사하는 지역, 또는 지금같은 특별한 상황에서 반드시 하나님께 물어보고 인도함 받아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이 땅을 너와 너의 자손에게 주고 축복 하겠다”고 약속하셨던 가나안에 와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예배하며 살았다. 그러나 흉년의 때에 하나님의 인도 하심 없이 애굽으로 갔다. 거기서 이집트의 바로왕에게 아내를 여동생이라 했던 일로 부끄러움을 당하고 나서, 다시 가나안, 처음 하나님을 예배했던 곳으로 되돌아왔다. (창12,13장) 하나님은 또다시 흉년을 겪고 있었던 이삭에게 나타나셔서 애굽으로 가지 말고 그랄에 머무르라 하셨고, 그 땅에서 너와 너 자손을 복주겠다고 약속하셨다. 또 예수님이 태어나셨을 때는 아기 왕을 죽이기 위해 헤롯이 두살 아래 모든 사내 아이를 죽이라고 명령하였을때 하나님은 요셉에게 아기 예수와 마리아를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라고 하셨다. 그리고 그들은 헤롯이 죽을때까지 그곳에서 2년동안 살다가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왔다. 이와같이 하나님은 상황에 따라 누구에게 어디로 가라, 또는 있는 자리에 그대로 있으라고 인도하시는 때가 있다. 상황때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잘 받아야 한다는 것을 성경의 많은 부분에서 말씀하고 계시다.
우크라이나 국경에 바로 접해 있는 러시아의 한 도시 로스토프 온 돈에서 사역하고 있는 우리는 현재, 아직은 이곳에 있으라는 인도함을 받은 자들이다. 이나라는 지금 전쟁의 긴장 속에서 핵과 원자폭발의 위협으로 이나라의 운명도, 우리 각자의 삶과 사역의 내일도 알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더 안전한 곳에서 살겠다고 떠나고 있는 상황이다. 불안정한 이나라 상황에서 하나님은 나에게 어떤 마음으로 살기 원하시는가?
삶과 죽음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는 것이다. 성경에는 오래 살면서 하나님의 일을 했던 인물들이 있다. 그런데 하나님의 부르심과 뜻에 순종하다가 이른 나이에 죽은 사람들도 있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는 우리가 오래 살거나 짧게 사는 것 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이 있지 않을까?
예수님으로 부터 “선지자 보다도 큰 자요, 여자들에게서 난 자 중에서 가장 큰자”라는 인정을 받았던 세례요한은 매우 일찍 죽었다. 순교자 스테판도 다른 사도들이나 집사들처럼 오래 사역하지 않았고, 초대교회 핍박 초기에 가장 먼저 순교 하였다. 우리가 이들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얼마나 오래 살았는지와 상관 없이, 그들이 그들의 부르심의 자리에서 부르심 대로 살다가 죽었던 그 때, 그 순간부터 그들은 영원히 영광스럽게 하나님과 함께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도 인간으로서 33세에 죽으셨지만 지금까지도 영원토록 하나님 우편에 계신것처럼! 그러므로 우리가 언제 죽어도 그것이 끝이 아니요, 영원히 사는 것이다. 내가 나의 부르심 대로 살다가 죽으면, 나의 부르심 대로 하나님께 순종하고 기쁘시게 했던 나의 삶 그대로 하나님과 영원히 살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있으라고 하시는 그 자리에서 나의 부르심 대로 사는 삶이 하나님께 가치 있고 기뻐하시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기에 다니엘도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고 하루 세번 여전히 기도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사람이 하나님 뜻도 묻지않고 순종도 하지 않고 자기 뜻과 노력으로 오래 살려고 하는 것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다가 언제 죽더라도 그것은 죽은 것이 아니라 영원히 사는 것임을 믿는다. 그러므로 나는 내일을 알 수 없는 현재의 상황 속에서도 평안을 누리며 살 수 있다.
그리고 항상 핍박으로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사도 바울이 어떤 마음자세로 살았었는지 성경에서 볼 수 있다.
(빌립보서1:20-21) 내가 간절히 기대하고 소원하는 것은,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께서 존귀하게 되시는 것이고,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시니 죽는 것도 유익하기 때문이다.
바울은 자신의 죽음까지도 그리스도를 존귀케 하고자 하는 것이 소원이었다. 그리고 심지어 그의 안에 사는 것이 그리스도 이시기 때문에 자신이 죽는 것도 유익하다고 고백하고 있다. 내가 지금 이곳에서 집중해야 할 나의 일과 부르심은, 바울처럼 사나 죽으나 내 안에 그리스도로 가득 하게 하고, 나를 통하여 그리스도가 일하시게 하고, 나의 죽음 조차도 그리스도를 존귀케 하고자 하는 소원으로 가득 해야 하는 것이 나의 부르심이고 할 일인 것이다. 이 말씀이 내가 나의 인생의 마지막, 사역의 마지막, 하나님 앞에 서는 날을 준비하는 나의 마음 자세이어야 함을 깨닫게 해 주셨고 혼란을 겪는 지금 이 시기, 이 곳에서도 하나님이 주시는 참 평안을 누리고 있음에 하나님께 진정 감사드린다!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셔서, 나를 통해 예수님이 하시는 사역이 나타나고 있는가? 나를 통해 예수님이 하셨던 사랑과 치유와 섬김과 죄로부터의 자유와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지는가? 그것을 이루도록 내 안에 예수가 사시게 하여, 사나 죽으나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케 되어 하루 하루 하나님 앞에 서는 날을 준비 하며 살기를 소원한다.
*지금은 10월 중순, 차갑고 싸늘한 이 나라의 분위기 만큼이나 올해는 추위가 한층 빨리 온 것 같습니다. 마음에는 저 글처럼 주님의 평안으로 감사하지만 점점 추워질수록 무너진 폐허속에서 난방도 없이 숨어 지내고, 먹을 양식을 제대로 구할 수나 있을지..고통 당하는 많은 우크라이나 국민들, 또한 서로 희생을 겪고 있는 러-우 양국의 군인들의 고생과 고통을 생각할 때 하루하루가 안타깝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들, 이 전쟁이 속히 종결 되고 모든 귀한 생명들을 지켜 주시기를 기도해 주시기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